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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구, 일제 조병창 유물 문화재 등록 가시화

-강제동원 및 노동자 거주지 영단주택 변천사 연구 기대

 

인천 부평구 부평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일제강점기 인천육군조병창과 산곡동 영단주택 유물의 문화재 등록이 가시화되고 있다.

 

12일 부평구에 따르면 인천시는 최근 부평구가 신청한 조병창과 영단주택 유물의 가치를 인정해 ‘등록문화재 등록 예고’를 공고했다.

 

시는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친 후 인천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문화재 등록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에 앞서 부평구는 부평역사박물관이 소장 중인 조병창 관련 유물 7건 10점과 산곡동 영단주택 관련 유물 3건 3점을 지역사적 의미와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인천시에 등록문화재 지정을 신청했다.

 

시의 등록문화재 지정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일제강점기 조병창의 강제동원 실상이나 조병창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던 영단주택의 변천사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구는 기대하고 있다.

 

남한 최대의 군수기지, 부평

 

인천육군조병창은 1941년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군수 물자 보급을 위해 부평에 만든 대규모 무기제조 공장이다. 일본이 한반도에 유일하게 건설한 조병창으로, 부평에는 조병창 본부와 제1제조소가 세워졌으며 평양에 있던 병기제조소를 제2제조소로 예하에 뒀다.

 

1940년대 초반, 조병창이 들어선 부평은 ‘남선(南鮮) 최대의 군수 공장’이라 평가받았다. 조병창뿐 아니라 조병창의 하청공장들이 조병창 주위로 속속들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왜 부평에 조병창이 들어섰나?

 

부평은 일본 육군이 부지 확보에 용이한 지역이었고, 아울러 조병창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지형적 특징과 교통의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 육군은 기존 사격연습장으로 활동하던 부평연습장 부지 70만 8천 평을 조병창 부지로 수용해 대규모 부지를 신속히 확보할 수 있었으며, 추가로 부평연습장 주변 부지 43만 평을 매수했다. 

 

이곳은 넓은 평야에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징으로 미군의 공습을 피할 수 있었고, 부평역으로부터 조병창 내부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부설해 원료와 생산물을 효과적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 서울과 가까워 노동력 확보에도 이점이 있었다.

 

조병창 운영과 강제동원 관련 유물

 

이번 ‘일제강점기 인천육군조병창 관련 유물’로 등록 예고된 유물은 ▲조병창 발행 서류 2점 ▲조병창 제조 총검 3점 ▲조병창 제작 군용 탄입대 1점 ▲평양제조소 제작 군용 탄입대 1점 ▲조병창 기능자양성소 수첩 1점 ▲조병창 기능자양성소 훈련생이 쓴 엽서 1점 ▲조병창 기능자양성소 견습공 졸업증서 1점 등이다.

 

해당 자료들은 조병창의 부지 확보와 운영, 군수품 생산, 강제동원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당시 일본은 철수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군수품들을 폐기해 현재까지 전해지는 자료는 극히 드물다.

 

특히 기능자양성소 관련 유물들은 조병창에서 벌어진 강제동원의 실상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증거 자료이기에, 학계에서는 앞으로의 관련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병창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영단주택 관련 유물

 

‘부평 산곡동 영단주택 관련 유물’로 등록 예고된 유물은 ▲산곡동 영단주택 분양계약증서 1점 ▲산곡동 영단주택 토지불하계약서 1점 ▲산곡동 영단주택 등기권리증 1점 등이다.

 

이번 자료는 조병창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산곡동 영단주택이 해방 이후 국가 소유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재개발이 예고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산곡동 영단주택의 변천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조선주택영단이 대한주택영단으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 기존 주택을 민간에 불하한 증거가 되기에 우리나라 주택사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화재 등록의 의미

 

일제강점기 부평은 일제에 의해 군수 기지로 개발되고,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노역에 시달렸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번 문화재 등록 예고는 부평역사박물관에서 그동안 지역사 연구와 전시물 확보 차원에서 수집해온 유물의 역사적 가치를 시 차원에서 공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 등록 신청을 진행한 김영헌 부평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박물관에서 그동안 수집한 부평 지역 유물을 시 문화재로 등재하는 일을 추진하게 돼 보람을 느낀다”며 “문화재 등록이 완료되고 더욱 많은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아 지역의 역사를 품은 유물을 관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차준택 구청장은 “이번 문화재 등록을 통해 지역의 아픈 역사가 미래를 위한 희망의 역사문화 자산으로 자리 잡는 기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부평만이 지닌 역사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해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 등록 예고가 된 유물들은 현재 부평역사박물관 2층 부평역사실에서 전시하고 있으며 관람객들은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