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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고】고려천도공원, 그리고 유감(遺憾)

모처럼 과거에 담당 과장이었던 필자를 비롯해 한 솥밥을 먹던 직원들이 모였다. 신축년을 맞아 정다운 모습으로 덕담을 나누어야 할 자리지만 얼굴엔 하나같이 마뜩 잖다는 표정이 가득하다. ‘이번엔 우리구나’ 하는 모양새다.

 

한 지역신문이 지난 2019년 11월에 준공한 고려천도공원 상징탑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해당언론 인터넷 판 12월 23일자 헤드라인에 ‘팔만대장경이 거란족 침입 때문에 만든 것이라고?’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을 자극한 바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공원 중앙에 있는 상징탑 형상이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를 닮은 것과 내용이 고려라는 이미지와 맥락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남부지역에 비해 낙후된 북부지역의 관광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시작됐다. 북한과 맞닿은 지리적 환경을 이용해 ‘국난극복’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갑곳돈대부터 평화전망대에 이르는 요충지 마다 관광컨텐츠를 심어 넣는 사업이다.

 

고려천도공원은 민통선안보관광지 조성사업의 핵심이 되는 지역으로 차별화된 관광콘텐츠와 폭넓은 역사를 담고자 노력했다. 물론 사업계획 수립이나 얼개(전체의 뼈대)는 관련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대학의 전문기관에 의뢰 해 진행됐다.

 

고려천도공원 상징탑의 내용은 우리민족의 대문호로 칭송받는 이규보의 글 <동국이상국집>에 기록된 ‘대장각판 군신기고문’중 일부이다. (초조)대장경의 불력으로 거란을 물리친 것처럼 몽골의 침입 또한 대장경 판각을 통해 물리치겠다는 간절한 발원문중 일부를 나타내고 있다.

 

당초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보관됐던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며 이를 다시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6년에 걸친 대역사 끝에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 합천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재조대장경인 팔만대장경이 그것이다.

 

본 사업에서는 1232년 고종이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개성을 떠나 승천포에 닿았을 황망함과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고려인들의 염원을 이규보의 글을 빌어 표현했으며 위대한 민족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만들 수 있었던 그 시초를 나타내고자 했다.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같은 사실이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말한 것처럼 역사를 과거사실의 재현으로 만 보지 말고 현재에 발을 디디고 서서 해석하고 재구성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획득 할 수 있다고 본다.

 

팔만대장경이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간절한 불심으로 일구어낸 위대한 민족문화유산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앞 뒤 정황을 다 잘라버리고 일부 사실을 비틀어 열심히 일해 온 공직자들에 대한 폄하와 과도한 질책은 군민의 단결과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주어진 사명에 대한 세심한 고찰과 추진의 중요성을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신축년 새해를 맞아 모인 필자를 비롯해 동료 공직자들 역시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군민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한다.